(주부야설) 이럴 수는 없어 - 1부

(주부야설) 이럴 수는 없어 - 1부

2013년 8월 아주 무더운 여름날.

한 군사재판소 법정.

법정에 들어서기 전 잠깐 창문을 통해 바라본 하늘은 자신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푸르기만 하다.

그곳에는 피고인 박상민 상병이 포승줄에 묶인 채 조용히 판사의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박상민 상병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에서 눈물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그놈. 그 한 놈을 해결하지 못한 게 여전히 상민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자식! 그 새끼! 그 새끼를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분하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딱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상민 상병의 두 눈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린다.




탕!탕!탕! 


그리고 그로부터 4개월 후... 박상민 상병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2010년 6월...

참 따뜻한 날씨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그렇게 화창한 날씨, 더구나 축구광인 상민에게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월드컵 조별 예선 한국의 첫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오늘 같은 날엔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에 가서 응원을 해야 하지만 상민에게 주어진 현실은 월드컵은커녕 이제 한동안은 축구 자체도 쉽게 즐기기 힘들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


지금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열심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이 순간이 상민이에게는 마냥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오히려 상민이의 마음에는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조수석 창문만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민이다.

뒷자리에 앉아있는 어머니의 표정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눈가엔 촉촉하게 눈물마저 맺혀있다.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어이, 아들!"

"네."

"걱정되냐?"

"아니요."

"그런데 왜 그렇게 풀 죽어 있냐? 아버지 때는 말야....."


또 시작이다. 남자들이 모이면 절대 빼놓지 않고 한다는 얘기. 축구 얘기, 군대 얘기, 군대에서 추구한 얘기.

아빠는 군대 얘기를 꺼내면서 혼자서 또 흥분을 하신다. 입에서 튄 침이 차 앞 유리를 더럽히지 않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열변을 토하고 계신다.

이 차에 탄 식구 중에 아빠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속으로 그만!! 을 외치는 상민이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빠는 상민이가 입영할 훈련소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도 않으셨다.

진짜 군대 다녀오면 할 말이 많은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상민의 마음속 한편에 조용히 떠올랐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점심시간쯤 되어 훈련소 근처에 도착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므로 상민이네 가족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한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사방에 보이는 빡빡머리, 그리고 그의 가족들로 보이는 무리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대부분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보자 상민에게는 이제 군대가 진짜 현실로 다가왔다.


마침 방 한쪽에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던 가족들이 일어나고 상민이네 가족들은 그 테이블에 가서 앉아서 바로 주문을 한다.

평소 상민이가 가장 좋아했던 짜장면을 곱빼기로 주문하고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상민은 입맛이 없었다. 몇 젓가락 깨작깨작하다가 젓가락을 놓는다.


옆에 계신 엄마도 입맛이 없으신지 상민이와 비슷하게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아빠는 이 둘이 식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관심에도 없는 것처럼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어 치운다. 그리고 상민에게 한마디 건넨다.


"상민아!! 군대는 네가 상상하는 곳처럼 무서운 곳이 아냐. 아버지도 다녀왔고 많은 대한민국 남자들이 다 다녀왔어. 너도 할 수 있어. 걱정 마라. 알았지?"


위로인지 놀리는 것인지 상민은 분간은 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을 했다.

밥을 먹고 나와서 시간에 맞춰 훈련소 정문을 들어가려 하니 주변에 돌핀 시계를 늘어놓고 파는 사람, 군에서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수첩과 여러 가지 도구들을 늘어놓고 파는 사람 등등 잡상인들로 차고 넘쳤다.

그러나 상민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눈도 안 보이게 헬멧을 눌러 쓴 위풍당당한 군인이 지키고 있는 위병소만 보일 뿐이다.


이제 저곳을 통과하면 난 사회와 이별이겠지

부모님과 연병장에 들어선 상민은 넓은 연병장을 보며 잠시 감탄사를 내뱉는다. 자기가 다니던 고등학교 운동장보다도 몇 배는 더 커 보였다.

이 넓은 곳에 나와 같은 애들이 가득 들어찬다는 건가?


잠시 후 연병장 스피커를 통해 입대하기 위해 온 남자들은 전부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자 사방에서 엉엉 우는 아줌마들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아들을 끌어안고 있는 아저씨들, 군데군데 여자친구도 데리고 왔는지 말도 못 하고 훌쩍거리는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상민이도 부모님과 이별의 인사를 나눴다.


연병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 그리고 어설픈 경례와 함께 훈련소장의 짧은 환영 인사가 끝나고 가족들을 향해 단체로 경례를 한다.

순간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상민의 눈가도 촉촉하게 젖어왔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제 다 돌아가고 상민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연병장을 지나 한 건물 뒤편으로 가자마자 연병장에서는 조용조용하고 별다른 위압감을 주지 않던 빨간 모자들이 닦달을 해대기 시작했다.


상민은 갑자기 변해버린 분위기에 정신없었다. 허겁지겁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에 바빴다.

상민이는 학창 시절 공부를 곧잘 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일류대는 아니지만, 명문대에 입학했다. 그렇게 대학을 2년을 다녔지만,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상민의 성격 탓이다. 그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입학하자마자 어떤 선배의 강제적인(?) 권유에 동아리 가입을 하긴 했지만, 전혀 그곳에는 흥미가 없었다.

더구나 그 동아리는 여자들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말로만 듣던 한효주나 이민정 같은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밥도 사주고 수업도 같이 듣고 그런 낭만을 기대했지만 정작 다녀보니 그건 현실에서는 어렵고 그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상민이는 친구도 별로 많지 않았고 인사를 하긴 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선배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2학년이 되어서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걸그룹 애들 같은 그런 후배들이 달라붙어서 선배, 밥 사주세요~!!하고 졸졸 따라다닐 줄 알았는데 그것도 틀렸다.


상민이가 여자 후배들과 만날 때는 오직 수업 시간에 내준 조별 과제물 때문에 모일 때뿐이었다. 그때도 상민이는 늘 조용하게 자리만 지키다 오는 편이었다.

상민이는 키가 작다. 그리고 왜소했다. 165센티미터에 53킬로그램의 몸무게. 흔히들 말하는 옷걸이가 시원치 않으니 뭘 입어도 어색하고 어딜 가도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상민이었다.


어떤 때는 시내에 나갔다가 자신보다 키가 크고 늘씬한 여자들이 자신의 옆을 지나갈 때는 긴장까지 하기도 했다.

그만큼 상민은 본인에게 자신이 없었다.


그런 상민이가 입대했다. 상민이 입대 소식을 들은 예비역 선배들은 잘 다녀오라고 응원을 해주는 편이었지만

대체로 저런 허약체질에 왜소한 체격으로 군대에서 받는 훈련을 제대로 견딜 수나 있을까 하는 시선들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듯했다.

그런 상민이가 입대했다. 진짜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또 다른 사회 속으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유일한 위로라면 입대를 위해 휴학계를 내고 동아리에 들렀을 때 가장 자신을 어색하지 않게 잘 대해주었던 선배들 강태식 선배와 노철후 선배 두 명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입대 후에 상민은 매일같이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차츰 군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되면서 편지 쓰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부모님도 답장을 해주시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물론 아빠는 답장을 안 하시고 주로 엄마 편지였지만 말이다.


상민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이셨다. 아빠는 작은 회사에 과장으로 계시고 엄마는 보험 일을 하신다며 열심히 돌아다니신다.

처음에는 아빠 혼자 돈 벌어도 된다며 엄마가 보험 일 하는 것을 만류했지만 엄마는 아들이 커갈수록 학비며 생활비며 더 많이 들 거라며 미리미리 벌어놓을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며 일을 시작하셨다.

엄마는 160센티미터에 48킬로의 가냘픈 체격이다.

그런 몸으로 온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지칠 법도 하지만 아빠의 퇴근과 상민이가 공부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는 거의 빠짐없이 미리 와서 따뜻한 저녁을 준비해 주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상민은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엄마는 일을 나가실 때 항상 정장 차림에 바지를 입으셨다. 구두도 단화를 고집하셨다. 그게 돌아다니며 활동하기에 편하다는 것이다.

상민은 엄마가 보험 영업을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의 그런 말이 수긍이 되었다.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엄마도 살림에 나름 보탬이 될 정도는 벌어오셨다.

그러나 얘기를 들은 바로는 영업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상민은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마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했던 말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등록금은 얼마나 비싼지 거기다가 이것저것 들어가는 돈도 아주 필요했고 식구들이 생활하려면 엄마가 돈을 벌어오는 것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아빠는 만년 과장이시다. 성격은 참 좋으신데 뭐가 문제인지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하신다.

어쨌든 가족 얘기는 잠시 여기서 멈추고 상민이는 머리가 있어서인지 나름 눈치 있게 군 생활을 잘해 나갔다.

훈련소에서도 조교들에게 빠릿빠릿하다는 소릴 들으며 칭찬을 많이 들었고 잘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4주가 지나 벌써 퇴소식을 할 시기가 되었다.


장병들의 각 집으로 퇴소식 날짜가 잡혔으니 부모님들은 참석하시라는 연락이 갔고 며칠이 지나 퇴소식 날이 되었다.

퇴소식을 하기 위해 연병장에 모였고 벌써 저 멀리 수많은 장병의 가족들이 구름떼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상민이는 혹시나 부모님이 보일까 해서 잠시 두리번거려 봤지만, 저 많은 사람 중에 부모님을 찾는다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이내 찾는 것을 포기하고 한참의 퇴소식을 거친 후에 드디어 부모님과의 면회가 이루어졌다.


잠시 기다리자 저 멀리서 부모님이 오시는 것이 보였다. 상민이는 부동자세로 서서 기다렸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환하게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상민은 또다시 맘이 싱숭생숭해졌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퇴소식이라서 그런지 엄마는 오늘 예쁘게 차려입으셨다.

하얀 블라우스에 정장 차림, 그리고 평소에는 자주 입지는 않던 정장 치마와 그 밑으로 눈부시게 그려지는 살색 스타킹과 평소에는 돌아다니기 힘들다며 잘 안 신고 결혼식장이나 중요한 자리에 갈 때만 신던 하이힐을 신고 오셨다.

상민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 엄마 예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사실 그렇다. 아빠와 엄마는 나이 차가 10년이 난다.

엄마가 막 대학을 졸업 23살의 나이에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직장에서 일하던 10살 차이가 나던 아버지를 만나서 멋도 모르고 3개월 만에 결혼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식구들이 밖에 나가면 아빠는 배도 나오고 사장님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아저씨 스타일인데 엄마는 체격적으로 그렇고 예쁘게 화장까지 하고 나가면 혼자 다닐 땐 아가씨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뻤다.


지금도 아빠와 엄마가 그렇게 만나서 결혼했다는 사실이 신기해질 때가 있다.

엄마의 나이 45세 한창 중년이 되어가면서 가장 예쁜 꽃을 피울 나이 아빠는 55세. 진짜 아저씨다. 옆집 아저씨.

잠깐의 상념에서 깨어나서 앞을 바라보니 남자가 혼자가 아닌 두 명이 같이 온다.

아빠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대해주었던 동아리 선배 두 명과 엄마가 같이 오신 것이다.


반갑게 해후하고 아빠 안부를 물었다. 엄마 말에 아빠가 회사의 중요한 계약 처리 때문에 올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 혼자 부대까지 찾아오기가 어려워서 고민할 때 마침 우연히 선배 두 명과 연락이 되어서 마침 태식 선배가 차가 있어서 그 차로 함께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심 태식 선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같이 온 철후 선배에게도 말이다.


사실 부모님만 오실 거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두 선배의 존재는 더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했다.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 훈련받을 때는 그렇게 가지 않던 시간이 정말 오랜만에 엄마 얼굴도 보고 선배들 얼굴도 봤는데 보자마자 또 이별이다.

짧은 시간의 면회가 끝나고 엄마와 두 선배는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아주 늦은 시간에 상민은 기차에 올랐다. 자대 배치가 이미 되어 있었다.


상민은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그래도 차를 타고 1시간은 가야 하는) 곳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힘든 훈련소 생활을 뒤로 하고 당당하게 작대기 하나를 달고 자대에 갔지만 주위에는 온통 막대기가 태산처럼 쌓여 있는 고참들만 수두룩한 곳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 내무반 실세라는 박진수 상병은 새로 온 신병이 귀여운지 내무반 생활 첫날부터 나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다른 후임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박 상병을 말릴 때도 자기랑 같은 학교 출신이고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산다면서 병아리 상민이를 이곳저곳 끌고 다니면서 가르쳐 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대체로 내무반 분위기나 자대 분위기는 좋았다.


박 상병이 자기를 감싸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절함 속에 은연중에 배어 있는 느끼함은 좀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렇게 박 상병과 가까워지면서 다른 부대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소소한 가족사들과 부모님 이야기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얘기를 다 해버렸다.


사실 상민이는 박 상병을 본 기억이 없다. 하기는 자기가 아파트 산다고 아파트 주민 전부를 아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것이 어쩌면 상민이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박 상병이 제대를 하고 상민이가 상병을 달게 된 1년여가 지난 후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미래의 일을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자세하게까지 집안 사정과 엄마 얘기까지 꺼내지는 않았을 거다.

너무나 세상 물정을 몰랐던 순진하기만 했던 상민이의 인생의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른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닐까?

박 상병이 자기에게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엄마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는 걸 지금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차라리 박 상병을 안 만났더라면, 이 부대로 자대 배치받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자신에게 폐쇄된 사회라는 군대라는 굴레의 속박이 없었더라면.

하지만 어쩌랴!


돌을 던진 사람은 재미 삼아 던져도 그것을 맞은 개구리는 죽어버리는 이런 가혹한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상민이와 박진수 상병의 만남은 어쩌면 잔혹한 한 편의 영화였는지도 모른다.

온갖 복선이 깔린 잔혹 스릴러물처럼.